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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
YOUNG
"Cosmic dust isn't far away, that's us."
“One deep summer night, the main character 'I' meets a child in an underground bar. A child who was simply called 'Ai' without asking each other's names. Then one day, the child suddenly disappears, leaving only the words that cosmic dust is not far away, that is us. The owner of an underground pub and a friend of 'I', an astronomer, find the island where the child is supposed to be through the Morse code and GPS coordinates asking for help in the notebook left by the child. 'I' heads to an island far to the east to meet the child... .”
All characters in the cosmic dust are not given names and genders. Characters are usually referred to by specific nouns or occupations (eg, child, boss, friend, old man), and their gender depends on the reader's imagination. Based on 'quantum mechanics', a huge discourse in the scientific community, it was created to literaryally reconstruct the astronomy-particle theory (quarks) but not to betray scientific facts. , and the very existence of 'I'. Through the wounds of the wandering protagonist and the people around him, we hope that the reader will ponder his existence and why. An average of 14,000 people commit suicide every year, but a topic that no one speaks of easily, a strange land where no one is born anymore and the living disappear by themselves. Can the saying 'the world is a bright and beautiful place' be convincing to those who think the world is a dark place, and to those who actually live in a dark world? The main character in the novel, 'I', leaves for an island to escape from all these questions (or to find some answers), and encounters some lights in the process. It is hoped that the light will also spread to some people who are wandering today.
“This world is indescribably beautiful and full of great and deep love, so there is no reason to deceive myself with an afterlife story wrapped up without evidence. Rather, it is better to stand on the side of the underdog, see death directly, and be grateful every day for the brief but powerful opportunities that life has to offer.”
*From Carl Sagan-Cosmos
소설 <우주먼지> 프롤로그
"우주먼지는 멀리 있지 않아, 그건 바로 우리야."
프롤로그 - 점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던 건, 한창 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밤중에서도 아마 가장 깊던 밤이었던 것 같다. 수도 한 가운데에 놓여도 모든 문명이 정지된 듯 고요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와 풀벌레 같은 것만 아스팔트 사이를 가득 메우던 그런 밤. 그해 장마는 유난히 길어서 내내 끈적했고, 나는 매일 밤 갯벌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발버둥 쳤다. 낯선 어떤 일을 막 시작해 보고 있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인 데다가 빠른 적응이 필요했던 출발의 때. 그러한 시절엔 항상 어려움이 동반되기 마련이라지만, 보다 설명하기 복잡한 밤이 스며들었다. 지구가 태양을 등져도 행성 온도는 너무나 뜨거웠고, 비인지 땀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나는 항상 어떻게든 젖어있었다. 비릿한 물웅덩이 같은 냄새가 코 안에 가득 흘러 찬 채로.
신호등마저 모두 꺼진, 텅 빈 밤의 검은 도로를 질주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차창 너머로 무엇인가 재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 헤드라이트에 언뜻 비친 풍경과 길에 쓰러져 있는 만취객으로부터 어떤 형상이 그려졌다. 잊고 있던 존재와 줄거리가 장마 속 안개처럼 꿈틀대며 흩어 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밀물처럼 일렁이는 감정들. 그러나 한동안은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썰물로 다시 흘려보냈다. 그런데도 어떤 대화 하나 만큼은 끊임없이 파도처럼 되돌아와 몰아쳤다. 눈에 담긴 모든 풍경과 손에 닿는 대부분의 물질 속에, 어떤 이야기 하나만큼이 계속해서 시공간의 개념을 뭉뚱그렸다. 마음의 소모였고 일종의 과부하였다. 그저 우연이라 생각하며 자꾸만 왜곡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밖에.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너울처럼 되돌아오며 철썩였는가? 아니, 차라리 질척였다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마치 잿빛 갯벌처럼 과거의 온 미세입자가 내 발등을 누르고 두 다리를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 결국 찰나의 불빛에 지배당한 불나방과도 같이, 파도를 따라 떠내려가기로 작정한 작은 조개껍데기처럼, 그곳으로 몸을 던져야만 (아니면 떠내려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큰북에 덮인 짐승의 피막이 쿵 쿵 쿵 하고 울리며 커다란 진동으로 밤의 세계를 덮칠 때….
쿵 쿵 쿵
우리는 때로 무조건해야만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딱히 그래야만 한다는 동기 없이, 설령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별로 설득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오래된 대화 하나와 뭔지도 모를 진동 따위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되는 당신의 다른 많은 다짐처럼 내 이야기도 이렇게 쓰이려나 보다. 그토록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과거의 어느 밤. 그 밤의 검음이 까맣고 까맣다 못해 마치 하얗게 보이던, 가장 깊던 밤중의 밤. 장맛비에 튕겨 오르는 젖은 흙냄새와 내 몸에서 풍기는 어떤 퀴퀴한 몸부림으로부터 아마 9여 년 전쯤. 습기와 소음으로 가득 찬 오늘의 여름으로부터 어쩌면 좀 더 먼 어제 속에 있을 그해의 계절에,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말하길 우주먼지는 멀리 있지 않다고, 그건 바로 우리랬다.
“우주먼지는 멀리 있지 않아, 그건 바로 우리야.”
별은 사실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반사할 뿐이라며. 심지어 매끈하지도 않다던데 잘만 그러네? 둥둥 부유하다가 어쩌다 한번 반짝여본 건데 우리가 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해, 그러니까 별거 없는 우주먼지 같은 청춘이지 아프긴 왜 아파! 그때, 네 나이 23. 다들 꽃 같다고 했는데 네가 꽃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사람들은 몰랐을 거다. 23이 뒤집힌 나이가 벌써 올해인데, 우주만 늘어놓던 네 소식의 마지막도 사라졌다. 누가 그러더라, 먼지는 사실 구를 때로 구르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돌멩이라고. 그럼 먼지로 가득 찬 암흑의 세계는 경이로운 건가. 범접할 수 없는 꽃의 완결함이 너무나 위대하므로, 그리고 넌 그것을 제대로 처리할만한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그래서 네가 꽃을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처음 너를 보았던 밤, 유난히 어두웠던 좁은 골목 끄트머리, 그 어둠에 네가 서 있었다. 담쟁이 넝쿨에 뒤덮인, 오래된 건물의 지하 술집. 거기에 적혀 있던 글귀 하나.
‘어미가 품어주던 그 방의 껍질을 사랑한다 9999 했다’
꽤 오랫동안 문장을 바라보며 서 있던 너. 우리의 첫 번째 밤이 시작되던 날, 네가 그랬지?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술집이 문을 열면 무슨 뜻인지 함께 물어보자고. 그 후로 날마다 방문했는데 가게는 언제나 닫혀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술집 불빛이 켜져 있는 것을 봤다. 들어가자마자 글귀에 관해 물었고, 사장은 우리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씁쓸한 커피를 닮은 까만 활자들에서 쓰디쓴 떫은맛이 우러나던 책. 안개꽃처럼 순하고 가벼워 보이는 종이의 사방에 고통이 만발하던 글쓴이의 삶. 버텨냈을까? 우리라면 과연? 며칠을 그려내 보다 그만두었다. 누군가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끊긴 문장과 단어 사이사이에 제멋대로 접속사를 집어넣는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린 각자의 궤적을 함부로 추적하지 않기로 했지. 굳이 기념하지 않아도 세월의 자국은 눈과 입술 표면에 기록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네가 사라진 후로부터, 우리 다짐과 달리 난 너의 궤적을 매일, 매일을 쫓아 헤맸다. 자국을 가늠할 눈과 입술이 더는 보이지 않았기에, 궤도를 계산할 언어와 대화가 다시는 이어지지 않았으니. 네가 사라진 그 날 후론, 어떤 파동도 더 이상 일렁이지 않았다. 실체 없는 그림자를 밟는 것 같았지. 그건 마치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형편없을 싸구려 탐정 같은 짓이었다. 아니면 어느 불법건축업자와도 같았지! 끊어진 기억, 대화 마디마디마다 제멋대로 길을 내고 집을 지었으니. 이렇게 하면 혹시라도 네 자취를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해야 너의 존재를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안 있어 건물과 골목이 전부 다 엎어져 버리더군. 언제나 그랬듯, 마치 사소한 버릇이나 습관처럼 가뿐히 토해져버렸어.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이 도시의 섭식장애로 인해, 또다시 하나의 기억이 가볍게 게워져 버렸지.
그래서 그런가, 오늘날 내 삶은 예전처럼 왁자지껄하지 않다. 마치 시골 어느 구석에 놓인 개량 한옥인데 처마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쌓일 대로 쌓인 고드름이 빙하처럼 쏟아지다 녹아내린 북국(北國)의 피오르(Fjord)다. 바로 어제 일처럼 파질 것만 같은, 지난날의 퇴적층이 협곡을 이루고 빼곡하게 압착되어 있다. 사실 세월이란 쌓이거나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편의상 설정된 개념이라던데? 내 시간은 이제 시분초 같은 기본단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은 어차피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몰라도 상관없잖아. 떠 있는 원이 달인지 태양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어. 밤낮을 잊고 자연스레 어제오늘을 쌓았다. 며칠쯤 지나면 점차 주와 달도 옅어지며, 미약하게나마 계절을 느끼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해가 바뀌었지. 1년, 2년, 3년. 그렇게 네가 사라지고 9년째가 되던 해, 외계행성으로 쏘아 올린 탐사선을 봤다. 액체화된 고대 생명체의 시체가 수백 톤짜리 철 덩어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녹아내린 뼈와 살이 들끓고 있었지. 잔해의 최후였던 것 같다. 가스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구름에 섞였다. 비로 내려 벼가 되면, 가을에 베어버리고 나는 그걸로 밥을 지어 먹었다. 내가 먹은 것은 쌀인가? 선조의 시체일 수도 있다. 몸은 더 자라나지도 않는데 그들을 씹어 안으로 삼키면, 자각되지 않는 세계가 배를 불렸다.
그리고서야 깊은 잠자리에 들면, 광막한 우주가 밤새 저절로 쓰이면서 소화되었다. 꿈을 빌어 갖가지 형태로 폭발하는 초신성 따위로. 사유 되지 않는 미지의 단어 원소가 융합을 포기하고 무의미하게 떠다녔다. 파장에 밀려 외부로 튕긴 문장의 마음은 떠돌이 유성처럼, 혹은 명왕성 같이, 차갑고 쓸쓸했지. 거기서 나는 꼬리를 늘어트리며 소각되는 육신이 되었다. 수백 톤짜리 철 덩어리도 들어 올리다 결국 벼가 되고 베어졌던 몸. 그 몸을 일으켜 물로 씻겼다. 악취 나는 육체를 닦이고 빗질까지 마치면, 남김없이 찌워내서 밥이나 해 먹었지.
그러나 너라는 존재. 너만큼은 그래, 꿈으로 현상되던 초신성처럼 언제나 빛나던 너. 너를 이룬 알갱이 하나하나가 나노미터 단위로 번쩍이고, 네가 쏟아내던 모든 언어가 나선을 이룬 은하일 때. 그 순간에 난 천문학자처럼 앉아 있었지. 그러나 나는 너를 분류하지도, 어느 우주에 네가 속할지조차 알 수 없었으므로. 만일 내게 광학 망원경이 있어 널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그래 적어도 너의 입자가 무엇이었는지 만이라도.
“우리도 언젠간 사라질 텐데. 넌 무엇이 되고 싶어?”
“글쎄. 사람은 다시 되고 싶지 않아. 이미 되어봤으니. 너는?”
“나는 무엇으로도 되고 싶지 않아. 무언가로 재구성되는 게 싫어.”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줄 알지, 오고 가는 그런 개념이 아닌데도.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하지만, 애초부터 나쁜 것도 없었단 걸 왜 모를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과, 그렇게 태어난 모든 이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 두 개만 되놰도 세상은 평화로워질 텐데. 점이 폭발해 세계가 생기고 선과 면을 이룬 걸까? 왠지 그건 아니라 믿고 싶어. 너는 창세기를 믿니? 에테르(Aether)를 부정하니? 우주란 뭘까? 우린 왜 하필 이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왔을까, 어디서부터 우린 존재했을까, 많고 많은 생명의 형태 중 왜 하필…. 영겁의 시간이었을 거야. 헤아릴 수 없이 길고 긴 침묵 속에, 어쩌면 지나치게 외롭고 힘들었을지도.
입을 맞추고 가슴에 혀를 포개서, 목젖과 쇄골을 따라 우리의 몸이 맞닿으면 손금마다 땀이 흘렀다. 강 같은 손금을 따라 흘러 흐른 땀이 네 손목의 칼자욱에 머물면, 나는 그것이 마치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거기에서 기어 올라온 진화의 생물이라던데. 굳이 그 넓은 물의 세계를 두고 지상에 오른 이유를 찾아야겠지. 그게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차가운 너의 어깨뼈를 두 손으로 충분히 데우고 나면, 잠든 네 손목의 대양이 두 눈 속에 펼쳐졌다. 심해에 새겨진 과거를 허투루 상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광대한 네 표면의 파동이 너무나 빛났으므로, 널 닮은 매일의 우주를 자꾸만 만져보고 싶으니까. 그걸 만지면 감출 수 없는 흥분과 환희로 세계가 빛났다. 그러나 때로는 극히 어둡고 차가운 은하 어딘가에 홀로 버려져 있는 듯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를 그리워했고, 알 수도 없는 미래를 잔뜩 기대해 봤던 것. 비극이 될지 희극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임에도, 우린 항상 다가올 미래가 찬란할 거라고만 예상했지. 어쩌면 애써 부정했을지도 몰라, 예정된 비극에 관하여.
관계라는 단어. 우리의 영역이 서로 겹쳐지던 중첩의 때 말이야. 그것은 서로에 대한 침범이었을까? 우리의 파동은 어떤 형태의 간섭이었을까. 상쇄, 아니면 보강. 아니면…. 네게도 우리는, 사랑이었을까. 너로부터 쏟아지는 방사능에 피폭되던 지난날. 네가 더는 보이지 않으니까 사라진 거로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밤하늘과 바다나, 바위의 이끼부터 오래된 빌라의 곰팡이에까지 모두에 네가 있었다. 모든 것과 모든 곳에서, 참 균일하게도 너는 부유했다. 마치 먼지처럼! 네가 누누이 말하던 그 우주먼지처럼.
너의 하루하루가, 우리의 매일이 무사하길 바랐다. 하지만 너…. 사람들은 이미 붕괴하였을 거라고, 그게 바로 네가 초신성처럼 빛나던 이유라고. 분명 아름다운 별이었지만 이름을 갖게 된 후부터, 세상이 널 관측하기 시작한 때부터, 넌 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 거라며. 점으로 시작돼 폭발하고 팽창하다 결국 냉각하여 끝내 붕괴돼버리는, 우주나 별의 일생처럼.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어. 더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할 지경의 때, 그때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 완전히 붕괴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너도 입버릇처럼 말했잖아. 어떤 섬연한 별들과 영롱히 빛나는 우아한 행성이라도 언젠간 모두 소멸하게 되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므로.
둥 둥 두 우 웅 ㅜ 우우 ㅇ 둥 ㅇ
널 떠올리면 떠오르는 활자가 있다. 먼지를 닮아 떠다니기만 하는 미조립 상태의 활자들이 발음되기를 잃고 점과 선으로 있다. 마치 별들의 시체처럼, 그들은 매일의 세상을 부유한다. 참사로 마무리된 어떠한 관계들, 패배로 물러난 아름다운 목적들. 내가 태어나 사는 곳은 아무래도 좀 이상한 곳인 것 같지? 산다는 건 이 모든 현상에 자타의적으로 관여하거나 (되거나) 멀리서 목도하는 것이었다. 별의 죽음을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무언의 소멸을 단 몇 초 만에, 실감 나게 소비하는 것. 행성의 방황은 소비재처럼 끊임없이 생산되고, 가여운 존재는 어디에선가 저 홀로 계속해서 어스러지는데. 이게 우리의 본능이고 운명일까? 마치 너의 붕괴를, 아무개였던 타인의 존재가 더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괴되는 것을…. 손끝에 그 잔해를 묻혀가면서도 우린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남아 계속 존재하는 게.
나 역시 언젠간 붕괴할 것이다. 서쪽 바다의 펄처럼 기억 위로 기억이 쌓이고 경험 위로 경험이 덮이던 이 모든 질량을, 결국엔 온 우주로 방출해 버리고 난 다시 알 수 없는 별의 무리 속으로 사라질 거야.
“무언가로 다시 구성되는 게 싫다면, 그냥 무(無)가 되고 싶다는 거야?”
“응, 그럴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왜 그럴 수 없어?”
“결국, 우린 모두 우주먼지가 될 테니까.”
“우주먼지?”
“그래. 잘 들어봐, 물질을 쪼개면 원자가 된대.”
“그래서?”
“원자를 또 쪼개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돼.”
“그럼 그걸 또 쪼갤 수 있어?”
“응. 그걸 또다시 쪼개면 쿼크(Quark)가 돼.”
“쿼크? 그럼 그걸 더 쪼개면?”
“또 다른 몇 개의 더 조그마한 쿼크가 되는 것 같아.”
“그럼 그걸 재차 쪼개면, 더 조그마한 쿼크의 더 조그마한 쿼크가 되는 건가?”
“그렇겠지? 하지만 언젠가, 더는 나눌 수 없는 존재에 다다를 거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
“과학적으로 아직 증명되진 않았지만, 난 이미 왠지 알 것 같아.”
“그게 뭔데?”
“뭐긴 뭐겠어, 우주먼지지. 과학자들이 이러쿵저러쿵 이름을 지어대겠지만, 결국 그 끝은 우주먼지 일거야.”
“난 잘 모르겠는데?”
“너, 왜 먼지가 부유하는지 알아?”
“글쎄.”
“더는 나눠질 수 없어서야.”
“이상한 말이네.”
“기묘한 거지. 위도 아래도 없이, 바닥도 꼭대기도 없이, 서늘하게 가만히 떠다니기만 하잖아. 하지만 매력적이고.”
“갑자기 그런 말이 떠올라. 사람은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
“맞아. 원래 철학적일수록 과학적일 때가 많으니까! 그 말처럼, 우리는 결국 수억-수조-수경의 먼지로 나뉘어서 그대로 어딘가를 떠다니게 될 거야. 사람들은 그게 그저 아무 생명도 의미도 없는, 더러운 잿빛 먼지일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과거의 어떤 존재들이었던 거지.”
“근데 그냥 먼지면 먼지지 왜 하필 우주먼지인 거야?”
“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린 지금 지하 술집에 있잖아.”
“그 술집이 어디에 있는데?”
“어디긴 어디야,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있지.”
“그럼 이 도시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니?”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더 멀리 가봐, 아주 더 멀리.”
“지구?”
“더.”
“우주…?”
“그래! 우린 우주에 있는 거라고. 결국, 먼지의 존재들이고. 그러니까 우주먼지지. 지금은 인간의 형상이지만. 둥둥 부유하다가 어쩌다 한번 반짝여본 건데 우리가 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해? 그러니까 별거 없는 우주먼지 같은 청춘이지 아프긴 왜 아파. 결국엔 다시 쪼개져서 우주 곳곳을 자유롭게 표류할 텐데.”
“우주를 떠돌아다니게 되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지 않을까?”
“글쎄. 운 좋게 뭉쳐있다면, 어떤 이름의 아름다운 성운이라 불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뭐, 암흑 물질 어딘가에 걸쳐지겠지.”
애초부터, 이미, 항상, 태어나고 사는 것과 사라짐과 상관없이, 우리가 있었고, 있고, 있을 곳.
그 후부터였다. 형태? 아니면 유령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한 때가. 먼지는 어디에서나 부유했고, 그것은 곧 ‘유령’이었다. 네 말로 인해 먼지에 생명이 부여됐으므로, 과거의 어떤 존재가 바로 먼지들이니까. 어둑한 골목 어귀에, 네온으로 가득 찬 번화가 중앙에. 그리고 내 방 안에 햇빛이 들 때, 나는 왠지 거기에 누군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무엇이었을까? 쪼개질 대로 쪼개져 부유하기만 하는 존재. 프리즘을 관통한 빛처럼 분산되어 있지만 분명히 관측되는 실재. 항성 간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지만 강력히 잡히는 교신의 증거. 과거의 어떤 본질 = 먼지. 모든 게 우주먼지이자 유령, 유령들이었다.
둥 둥 두 우 웅 ㅜ 우우 ㅇ 둥 ㅇ
부유하는 활자가 내 곁을 맴돌았다. 만지려하면 흩어졌고, 돌아서면 뭉쳤다. 각각으로 떠돌다가, 때론 무리 지어 내 입술 안으로, 혹은 당신의 얼굴 위에 올라섰다. 난 두려웠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작정했다. 정처 없이, 길을 따라, 이어지는 대로 무작정 길의 끝을 향해 밤의 도시를 운전했다. 오랫동안 나를 마주 보던 그 위태로움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멀리로 나를 운전했다. 땅과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동쪽 바다의 가장 깊고 깊은 섬으로, 멀고 먼 밤을 찾아 무(無)의 어둠 속에 육신을 뒀다. 섬의 초목 한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그 속에 몸을 숨겼다. 문명 없는 새벽이었다. 이름도 없이 관계도 없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섬에서 나란 존재는 성별과 이름이 없다. 과거가 없으니 미래도 없고 꿈이 없으니 현실도 없어, 더는 빌어먹는 존재들과 타협할 필요도…. 하지만 밀물처럼, 감정만큼은 언제나 밀려들어왔다. 썰물로 다시 흘려보냈으나 결국 성난 파도로 되돌아와 나를 세상과 폭력적으로 부딪치게 하는 것. 어떤 시인이 그러길, 파도는 죽음을 연습하는 지구상 유일한 생명체래. 저길 봐! 저기에 파도가 있다. 가장 먼 바다에서 태어난 그것이 꾸역꾸역 육지를 밀어내며 끊임없이 죽음을 연습한다. 굳이 바위까지 부숴가며 해안을 덮치고,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는 미숙한, 동시에 완숙한 존재가.
“들어봐. 파도가 부르는 노래!”
“파도가 부르는 노래?”
“응. 지금도 계속 부르고 있잖아.”
“무슨 노래를 부른다는 거야?”
“잘 들어봐. 파랑이 부서질 때 말이야.”
“물결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네가 그냥 소리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렇지. 그걸 노래라 생각하고 잘 들어보라니까.”
둥 둥 두 우 웅 ㅜ 우우 ㅇ 둥 ㅇ
“난 잘 모르겠어.”
“정말 저 아리아가 안 들린다고?”
“아직은…? 어떤 노래인데? 파도가 부른다는 아리아 말이야.”
“뜨거우면서도 차가워.”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가 잘 안 돼.”
“네가 그저 미지근하니까 그렇지. 아직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기 때문에.”
“내가 그저 미지근하다고?”
“그래. 그러다 결국 토해져 버릴 거야.”
“응?”
“파도한테 말이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그저 파도가 부른다는 아리….”
“너, 그거 알아? 달에는 30개의 바다가 있는데 모두 비어있대. 거기엔 물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달에 물이 없다는 건 상식이잖아.”
“그럼 달의 모든 바다에 이름이 있다는 건 아니?”
“그래? 이름이 있어?”
“응. 구름, 인식, 거품, 비, 고요, 지혜, 풍요, 파도….”
“그게 다 바다 이름이야?”
“그렇다니까!”
“예쁘고 신기한 이름들이네.”
“만약에 말이야. 그 안에 물을 채워 넣는다면 무슨 색깔로 일렁일까?”
“글쎄. 지구처럼 푸른색은 아닐 것 같고…. 하얀색이나 노란색?”
“난 말이야. 가끔 달의 파도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거든. 먼 과거에 말이야. 거기에도 내가 있었겠지? 아마 너도 거기에 있었을 거야.”
“그랬을까? 정말 그랬다면, 우린 어떤 바다에 있었을까?”
“글쎄. 너는 어떤 바다에 있었을 것 같아?”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걸. 너는?”
“난 파도의 바다. 거기서 일렁였던 파도이길 바라.”
“그럼 네 말대로 우리가 정말 달의 파도였다면…. 우린 무슨 색깔이었을까?”
“혹시 얼음새꽃이라는 꽃, 아니? 난 그 꽃처럼 우리가 금빛으로 일렁였길 바라.”
파도의 바다의 파도, 금빛으로 일렁였던, 마치 얼음새꽃처럼.
어떤 지방 사람들은 그 꽃을 눈꽃송이라 한대. 하얀 눈꽃송이가 하늘에서 내리면 지천이 노랗게 물들어간다. 아마 거기서는 그 꽃이 바다 위로도 피어나는 것 같지? 입자도 파동도 아닌 희한한 것이 결을 이루며 막 반짝였다. 금빛으로 빛나다가 이내 푸르게 일렁이며 나중엔 지구의 검은 바다를 꿀꺽하고 삼켜 먹었지. 생경한 음식을 소화하느라 머리가 찡하고 아랫배가 시린 거 있지. 내 몸은 있잖아, 이제 낡고 퀴퀴해서 밤이 오면 더는 만져지지 않아. 총총걸음으로 침대를 나와, 어둠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얼른 바다로 들어가 파도를 덮고 누워있어야지. 그런데 모래 속에 발목이 빠져 꺼내지질 않았다. 발등에 세계가 얹힌 것 같더라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어. 바닷바람에 먼지가 이는 걸 쳐다보는데 누가 그러더라. 달에는 30개의 바다가 있다고. 그리고 실은, 파도는 노래를 부른다네.
“노래라면 가사도 있어?”
“당연하지.”
“어떤 가사인데?”
…사랑하는 유령들에게. 이뤄지지 못한 안타까운 꿈이 부유하며 떠다니는 밤입니다. 그대들의 꿈이 우주 먼지처럼 세상에 가라앉고, 아이들은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항성 간 긴 여행에 지친 여행자들도 바다 위에 푸르게 내려앉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궤도를 이탈한 운석과도 같습니다. 정착되지 않는 삶들, 모체를 찾아 방황하는 젊은 혼들. 겉에 묻은 방황을 털어내고 나로 부서지는 해안을 바라볼 때 문득 일렁이는 감정 하나가 펼쳐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 역시 나와 같은 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일 겁니다. 은하 저편에서부터 잉태돼, 방황하며 떠돌다 마침내 우리 행성으로 불시착한 유령 하나. 당신을 닮아 쓸쓸하지만 사랑스러운 별 하나가, 이제 막 내 품안에 안겼습니다. 아마도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니면 그 무엇도 되지 않기 위해. 밀어내고 밀어내도 끝내 걸어 들어오던, 흰 거품의 먼지처럼….
한창 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밤중에서도 아마 가장 깊던 밤이었던 것 같다. 그 밤의 검음이 까맣고 까맣다 못해 마치 하얗게 보이던, 가장 깊던 밤중의 밤. 습기와 소음으로 가득 찬 오늘의 여름으로부터 어쩌면 좀 더 먼 어제 속에 있을 그해의 계절에, 폭발하던 초신성 하나 있었다. 광막한 우주 저편에서 저 홀로 어스러진 존재, 파동으로 주변을 뒤흔들더니 이내 먼지가 되어 세상 아래로 내려앉던 것. 출렁이는 검은 파도 위로 푸른빛의 입자가 넘실댔지.
“폭풍이 몰아칠 땐, 이제 더는 평화가 없다고 생각하게 돼.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을 알지만, 비 온 뒤 무지개라는 그 간단한 속담이 상식이 된 시대라지만, 때를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분명 지치는 법이니까.”
“….”
“왜 그런 때 있잖아. 그 어떤 위로도 다 조롱처럼 느껴질 때. 어디에서라도 위안을 얻으려 했지만, 누구에게서라도 상처를 받게 되고, 그래서 탓도 해보고. 이런저런 핑계도 대보고. 만만한 누군가를 적당히 골라 불행한 화받이로 만들기도 하고. 넌 어때? 그럴 때 없어?”
“나도 그럴 때가 있지.”
“넌 그때 어떻게 하는데?”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고 버텼던 것 같아.”
“더는 견딜 수 없다면?”
“보통은 그러기 전에 끝나던걸.”
“보통의 상황이 아니라면? 영영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데?”
“난…, 상상을 해. 행복한 상상.”
“행복한 상상?”
“응. 공상 같은 거. 그럼 잠깐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
“그래봤자 결국 다시 현실인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잠깐의 상상이 어떨 때는 큰 힘을 줄 때도 있어.”
“이미 지쳐버렸는데도?”
“응.”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응.”
“대체 어떤 상상을 했는데?”
“….”
“대답하기 곤란한 비밀 같은 거야?”
“난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돼.”
“어째서? 행복해지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냐?”
“말했잖아.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줄 알지, 가고 오는 그런 개념이 아닌데도.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하지만 애초부터 나쁜 것도 없었던걸 왜 모를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과, 그렇게 태어난 모든 이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 두 개만 되놰도 세상은 평화로워질 텐데.”
네가 얘기하던 유별난 말들을, 아마 이젠 나도 좀 이해하는 것 같지. 꿈을 꾸는 법도, 꾸었던 꿈을 다시 놓아 주는 법도,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어. 네가 받아 적던 파도의 아리아를, 나도 받아 적기 시작했으니까.
꿈을 놓을 때는
벌판에서 쉬다 날아가는 철새 떼처럼
훨훨 날아가게 날려 보낸다
빛 들지 않는 겨울 비탈에
엉덩이를 대충 파묻고
그림자를 떨어트린다
꿈은 본래 어려서부터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라서
떠나가는 뒷모습이 그리 서러울 수밖에
평생을 누르던 중력을 딛고, 오래된 궤도를 이탈하여, 이제라도 나는 너의 입자가 무엇이었는지 입증하려 한다. 설령 실패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이 글은 미지로 남았던 너의 존재- 그것에 대한 관측기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른거렸으나 미처 잡지 못하고 놓쳐버렸든 혹은 놓아버렸든, 너와 같은 초신성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같은 우주먼지에 대한 이야기.
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이,
어느 날 폭발했다.
= ⁂ x ∞
프롤로그 - 끝